앱테크 캐시워크 토스퀴즈 [영국] 동아프리카 5센트, 서아프리카 1페니와 에드워드8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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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아프리카 5센트, 서아프리카 1페니와 에드워드8세 이야기

화 수 분 2021. 12. 2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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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입니다..

금일 말씀 드릴 주화는 동아프리카 5센트와 서아프리카 10센트 주화입니다. 아시다 시피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입니다.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아래 룰러의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에드워드 8세 어딘가 들어본거 같기도 하지만 흔치 않은 이름이죠... 그렇습니다...영국의 풍운의 왕 에드워드 8세입니다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큰아버지 이자  조지6세의 형님이 되시죠...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시대의 풍운아랍니다.

재위기간도 1936년 단 1년 뿐이라 주화 자체도 많지 않은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짧은 재위였지만 발행이 되어 에드워드 8세가 있었다는 산 증거가 된 주화 들이죠 ...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왕관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영국의 왕, 에드워드 8세는 1894년에 태어난 조지 5세의 맏아들이자 영국의 왕자였습니다.

모험심이 강한 자유 분망한 분이었다고 전해지는 윈저 공은  할아버지였던 에드워드 7세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왕자로 성장합니다. 젊은 시절엔 해군에 입대해 참전하기도 했고  1910년 할아버지였던 에드워드 7세가 사망하자 당시 에드워드 왕가의  왕자였던 윈저 공도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갑니다.



 왕세자로서 당시 에드워드의 인기는그시절의 최고 인기 남자 영화 배우 '셀러브리티' 보다도  인기가 더  좋았다고 합니다. 외모, 지위, 활발한 성격 탓에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았고  그는 끊임없이 전 세계를 돌고 여행하며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물론 여자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가끔 결혼한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왕자의 사적인 행각과 염문이 멈추지 않자 왕실에서는 그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답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조지 5세는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1년 안에 본인의 인생을 망칠 걸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우려가 사실로 되고 맙니다.에드워드 왕자는 영국 왕실에서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심슨부인


    
그녀가 바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월리스 심슨 부인인데, 그녀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해군 조종사 스펜서와 결혼합니다. 10년 만에 첫 번째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건너와 다시 사업가인 심슨과의 재혼에 성공합니다. 타고난 패션 감각과 세련된 낌세를 지닌 심슨 부인은 남편 심슨의 재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런던 사교계를 휘어잡습니다. 그리고 한 파티에서 우연히 에드워드를 만나게 되고, 윈저 공은 당시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던 심슨 부인에게 첫눈에 홀딱 반합니다.

첫 만남에 호감을 가졌고  두 사람은  좋아졌지만 당시 심슨 부인은사업가  ‘심슨'이란 사람의 부인이였고, 그와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사이는 친구를 가장해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요즘 말로 ‘썸(미묘한관계)’로 사랑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깊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남편은 왕이 될 에드워드에게 고스란히 부인을 빼앗기게 됩니다. 두 번 이혼한 여자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왕세자...지금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당시 영국 왕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수가 없었고  이들의 사랑은 그의 가족들과 왕실에는 엄청난 충격 이였습니다.그런데도  왕세자는 이미 그녀에게 푹 빠졌습니다. 1936년 1월 아버지 조지 5세가 사망하자 곧바로 왕위를 이어받게 된 에드워드 8세... 그러나 본인의  왕위 승계가 선포되는 현장에서 조차 그의 옆에는  다른 남자의 부인인 심슨이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대영제국의 왕이 됀  에드워드 8세 그러나 그도  왕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본인과 결혼하더라도 심슨이 왕비의 칭호를 받지 않고,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왕위를 물려받지 않으면 어떠냐"는 협상까지 시도했지만 영국 내각과 정부, 교회, 가족들까지, 모두에게 거부당해서 그는  결국 사랑을  택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고 맙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여자 친구(심슨)를 포기할 줄 말았지만, 그에게 심슨 부인은 왕위와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나 봅니다. 결국 즉위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1936년 12월 10일, 동생 알버트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준 채 퇴위를 결정합니다. 에드워드 8세에서 그는 다시 왕자로 돌아간 그다음 날  라디오를 통해 인생을 뒤바꾼 결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사랑위해 왕위를 포기한다는 말을  발표합니다.
“무거운 책임을 맡는 일도, 왕으로서 원하는 바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일도,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I have found it impossible to carry the heavy burden of responsibility and to discharge my duties as king as I would wish to do without the help and support of the woman I love) 그래서 짐은 사랑을 택한다"...라고,

이 발표는 영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을 모두 놀라게 했고   에드워드 8세의 용기와 사랑은 영국 젊은 연인들을  감동 시켜며서  세계의 모든 연인들까지  감동시키고...   
그 발표문은  마침내 모든 연인들을 열광시키며서 '사랑이란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한다'는 용단으로 사랑의 인식을 변화시켜 버린겁니다.그래서  지금도 연인들 사이에  결혼을 반대하면 그때  즐겨 사용한 언어는  "사랑을 위해서는 왕관도  버린다"란 이말을 늙어나 젊어나 가장 즐겨 선호하며 애용하는  언어로 되어버린 겁니다.    

 심슨 부인과의 결혼은 에드워드에게 단순히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조국과 가족을 모두를 등지라는 선택이었고  특히 어머니 메리 여왕은 그의 결정에 크게  분노 해  영국 출입을 영원히  금지시키라는  지시까지 내리게했습니다."... 그건 이런 모든걸 감수해야만 하는 용단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올린 그둘의 결혼식에는 단 한 명의 왕실 가족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퇴위 후 왕이 된 동생으로부터 ‘윈저 공’이라는 직위를 부여받았지만 부인은 여전히 평민의 직위인 '심슨'이였고 이들  부부는 각국 나라 전체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커플이 되어 30년이 넘게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윈저 공의 모국인 영국만 빼고요. 허허허. ..
참 고놈의 사랑이뭔지...?
결혼식 당일 심슨 부인은 남편을 처음 만난 날때 입었던  칼러인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반대로  이루어진  둘의 사랑이  넘 애틋해서 인지...? 하느님은 다행이 이 부부를 35년간이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도록 해 줍니다.   두 사람은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파티와 행사에 참여하면서...어쩌면 왕족보다 자유롭고 화려한 삶을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이토록 절실한 사랑에도 영국 왕가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에드워드의 어머니였던 메리 여왕은 “고작  여자 하나 땜에 이 모든 걸...? 포기했느냐”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들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에드워드는 가족들의 장례식, 추모식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나중에는 영국을 방문하게는 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60대에 접어든 윈저 공은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흡연을 시작해 그게 후두암으로   발병되서 그는 결국 1972년 5월 28일, 77세의 나이로 왕이 아닌 윈저 공으로  사망합니다. 이때도 그가 머문 곳은 영국이 아니었고 그가  결혼 이후 부인과 줄곧 생활하던 프랑스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시신은 결국 영국으로 돌아가  왕실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14년 후 숨을 거둔 심슨 부인도 그녀 역시 결국은 영국 왕실로 부터  윈저공의 정식 부인으로 인정 받아 심슨 부인이 아닌 윈저 부인으로 남편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됩니다.그들의 사랑은 죽은 후에야 왕실에서 정식 부부로 인정을 받아 결실이 맺어지고 그녀가  눈을 감기전 이 기뿐 소식을 전해 듣고 그녀는 그렇게나 바랬던 소망인 왕실의 가족이되는  꿈이 이루어져... 그  고마움에 울었고 유언은 그들이 처음  만날때 입었던 푸른색상으로 그녀의 수의을 만들어  입혀달라는  부탁 말을 남기후..   그녀의 얼굴은 소원 성취가 이루저서인지...?  티없는 미소로 가득해 지드니... 눈을 감드라고 합니다.


          -  "겁쟁이는 사랑을 드러낼 능력이 없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다" -   
                      -  윈저공과 심슨 부인  -

 


출처: https://m.blog.naver.com/nahaneum/221273756484

 

☸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왕 "에드워드 8세"  이야기

➿웃음과 감동은 ...? 만병의  통치 약( 오늘도 많이 웃고 감동하자 !) ⏩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왕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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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공식적으로 알려지 내용이고요 ..

지금부터는 비하인드 스토리 입니다.....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서 물러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전 신비한 tv 써프라이즈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2002년 FBI에 의해 공개된 에드워드 8세에 대한 비밀이 전파를 탔다.

에드워드 8세는 미국 출신 디자이너인 윌리스 심프슨에게 첫눈에 반했다. 에드워드 8세는 그녀에게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에드워드 8세의 부친 조지 5세와 총리는 그녀와의 사랑을 반대했다.

윌리스 심프슨은 두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유부녀였기 때문. 왕세자인 에드워드 8세가 유부녀인 심프슨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영국은 충격에 빠졌다.

2002년 FBI가 공개한 비밀문서에 따르면 심프슨은 주영 독일대사인 요아힘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요아힘은 나치 정권의 실세로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다.

심프슨이 영국을 위협할 나치의 스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총리는 이 사실을 에드워드 8세에게 보고했다. 사랑에 눈이 먼 에드워드 8세는 총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에드워드 8세는 조지 5세가 숨을 거둔 후 심프슨과 결혼을 추진했다. 심지어 심프슨의 남편에게 이혼할 것을 요구하기도.

영국 왕실은 나치의 스파이와 결혼하는 것은 나치에게 협력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에드워드 8세에게 양위를 강요했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서 쫓겨났다.

 

영국 왕실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에드워드 8세에게 자신들이 미리 작성한 퇴임서를 읽고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왕위에 오른지 1년 만에 라디오를 통해 퇴임을 선언했다.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서 쫓겨난지 31년 만에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영국 왕실 초청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8세가 1년만에 퇴위한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 전해졌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1년 만에 퇴위한 에드워드 8세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그는 원래 알려진대로 왕위에 스스로 퇴위한 것이 아니라 쫒겨난 것이었다.

에드워드 8세는 윌리스 심프슨이라는 미국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왕실의 반대에 부닥쳤다. 심프슨이 첫번째 남편과 헤어진 후 두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유부녀였던 것.

이에 아버지인 조지 5세는 못마땅했다. 그런데 FBI 비밀문서에 의해 심프슨이 나치의 스파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에드워드 8세는 그와 사랑에 빠졌고 왕위도 물려받았다.

이에 영국 왕실과 정부는 그를 왕위에서 쫒아냈다. 쫒아낼 명분으로 나치 스파이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웠다. 이후 영국왕실은 에드워드 8세가 스스로 왕위에 물러난 것처럼 발표했다.

뭐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요 ....^^즐거운 수집생활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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